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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1

동네 병원을 가다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키쿠치(菊池)의 말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사실 나도 이유 없이 땀을 너무 많이 흘러서 다한증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프로젝트도 앞으로 2주후면 끝날 예정으로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 화요일은 회사를 쉬기로 하고 집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조그만 개인병원을 찾았다.

나는 매년 겨울에는 꼭 감기에 걸리는데 이 병원에서 지어주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도 안가서 완치되었기에 항상 이 병원을 이용했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걸로 소문이 나 있는 분이었는데 우리는 가끔 병원이 쉬는 일요일에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해서 합석도 하던 사이였다.

의사 선생님은 겨울도 아닌데 갑자기 원일이냐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제가 요즘 땀이 좀 많이 납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한번 진찰을 받아보려고 왔어요”
라고 말했다. 의사선생님은
“피곤하거나 그렇지는 않나요?” 라고 물었다.
나는 뭐 피곤했던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던 중 이였고 무엇보다도 남는 시간은 게임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피곤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자초지정을 의사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렇다면 먼저 소변검사부터 해볼까요?” 라고 말했다.
소변을 보고 30분 정도후에 다시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선생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소변검사에서 당체크가 제대로 안 나왔네요.
가끔 소변에 불순물이 섞이거나 피로가 쌓인 상태일 경우 제대로 검사결과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라고 말하셨다.

“아.. 그런가요? 그러면 다른 날에 다시 와볼까요?” 라고
말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면서,
“아뇨, 아뇨, 그럴 필요없이 내가 큰 병원을 소개해 줄 테니까 그곳에서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왠지 모르게 뒷머리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6년동안 의사 선생님이 다른 병원을 소개해 주겠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어서였다.

“혹시… 뭐가 잘못됐나요? “
나는 조금 걱정스러운 투로 물어보았다. 의사선생님은
“아니 뭐 잘못됐다 기보다는 소변 검사에서는 정확한 검사가 이루어지지않을 수도 있는데, 이번 검사에서 당이 상당히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우리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하면 일주일 후에야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일 큰 병원에 가보는게 어떨까 합니다.
내가 소개장을 써 줄 테니까 그걸 가지고 가세요.
오늘 중으로 대학병원의 담당의사에게 미리 전화해 둘께요.
걱정하지않아도 돼요. 그냥 검사만 하는 거니까.” 라며 나를 설득했다.

족집게 의사를 만나다

족집게 의사를 만나다

결국 회사에 연락해서 또 하루를 쉬고 다음날 아침에 선생님이 소개해준 지케이카이 의과대학 부속병원(慈恵会医科大学附属病院)을 찾아갔다.
대학병원 의사선생님은 소개장을 보시고는 바로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1시간 후 검사결과가 나와서 다시 담당 의사선생님에게 진찰을 받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혹시 요즈음 불면증을 겪고 있나요?” 라고 물었다.
“예, 제가 불면증이 조금 있는데 요즈음은 아예 1시간이상을 못 자겠더군요.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더라구요. “라고 말했다.
의사선생은
“흠… 그렇군요. 화장실을 자주 간다면 요 근래에 물을 많이 먹거나 하지는 않나요?” 라고 물었다.
“아.. ..예! 제가 요즈음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갈증이 심해져서 요즘엔 아예 물병을 달고 삽니다.
족집게 시네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세요?” 나는 너무나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끄떡이시면서
“그럼 혹시 다리가 저린다거나 그렇지는 않나요?” 라고 물었다.
“아~ 왜 가끔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깨는 경우가 있자나요?
그런데 두달정도 전부터 하루종~일 다리가 쥐나기 직전의 전기가 오는 것 같은 상태가 하루 종~일 계속되더라고요. 그래서 다리에 조금 힘을 주면 영락없이 쥐가 나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잠을 오래 잘 수 없던 이유도 자다가 갑자기 쥐가 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나는 이 의사선생님의 족집게 같은 질문에 “무당이 따로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마치 옆에서 지켜본 사람처럼 물어보는지 정말 신기하기만 했다.

의사 선생님은 요 근래에 크게 변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큰 고민이 있었다.
나는 원래 60키로의 마른 체형이었는데 일본 살면서 2년만에 체중이 85키로까지 늘어났다.
항상 마른 나의 몸을 볼때마다 볼품없는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나서 방에 있는 거울을 다 치워버렸는데 체중이 늘고나서는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은 모든 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내가 해외에서 홀로 일어서는데 아주 큰 영향을 끼쳐왔다.

그런데 2달정도 전부터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다이어트 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체중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체중을 원래대로 회복하기위해 나는 평소보다도 더 많이 먹고 또 먹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달만에 체중은 15키로가 빠진 상태였었다.
나는 급격하게 체중이 감소하는 이유가 너무도 궁금했다.

드디어 알게 된 나의 병

나의 고민을 다 들은 의사 선생님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아제상은 지금 매우 심각한 당뇨증세를 보이고 있어요. 제 소견으로는 이미 합병증이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가능한한 빨리 입원해야 할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편도선 수술을 제외하고 병원에 입원한적도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키쿠치(菊池)상의 말도 있고 해서 그냥 찝찝해서 검사한번 받아본 건데 갑자기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심각한 병인가요?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내가 왜 입원을 해야 하나요?” 라고 되물었다.
의사선생님은 혈액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지금의 내 몸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게 바로 그날 검사 받은 혈액검사 결과다. 제목에 “긴급 보고서” 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중간에 의사선생님이 손수 표시한 곳이 바로 헤모그로빈A1c 수치인데 12.2로 나와있다.

헤모글로빈A1c란 혈액 중에 당분의 비율을 말한다. 헤모그로빈a1c가 5.0이라면 혈액 중에 당분이 5%라는 뜻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혈당치는 몸의 피로상태나 식사내용에 영향을 받아서 수치의 변동이 심하지만 헤모글로빈A1c는 두달간의 평균 혈당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신뢰도가 더 높아서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당뇨병 체크 방식이다.

이 표는 헤모글로빈A1c 수치에 따른 몸의 상태를 말하는데
정상적인 사람은 제일 밑의 5.5이하지만 그 당시 나의 헤모글로빈A1c의 수치는 저 위의 빨간색 영역에 속해 있었다. 최대 수치가 14인데 나는 12.2로 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표를 보면 일본어로 “매우 위험”이라고 아예 느낌표까지 붙어 있다.
이 정도 수치라면 대부분 이미 온 몸에서 합병증이 시작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실제로 나는 이미 다리의 신경이 파괴되는 합병증이 오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하다.

병원에 입원하다

결국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검사결과를 말하고 이틀후에 바로 입원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 며칠동안 입원해야 하냐고 물으니 몇일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으므로 일단 한달로 예약해 놓자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장기 입원을 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만일을 위해서 가족분들에게도 연락을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였으나,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 퇴원하게 되면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이병원에는 당뇨환자가 두 부류로 나뉘어져서 입원하고 있었다.
한 부류는 이미 합병증이 심해서 거의 거동을 못하는 심각한 당뇨환자 병동이었고, 다른 한 병동은 가벼운 당뇨환자들이 입원한 병동이었는데 그 곳은 다들 건강한 사람들로 느껴질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보였다.

그런데 내가 입원하게 된 병실은 심각한 당뇨환자들이 있는 병동이었다.
이 병동은 독방과 2인실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4인실 병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제외한 세 환자는 거동이 불편할 만큼 심각한 합병증을 가진 당뇨 환자였다.
입원하자 마자 바로 인슐린 치료를 받겠 되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병실의 커튼이 걷혀지고 간호사분들이 식사를 침대까지 가져오는데 이때마다 다른 3명의 환자분들은 익숙하게 배를 까고는 자기 스스로 커다란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놓았다.
처음으로 그 광경을 보았을 때는 솔직히 적지않이 놀랐다. 그리고 나도 멀지 않아 저렇게 해야만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울적했다.
그래도 병원밥은 너무나 맛있었다. 양이 너무 적어서 항상 배가 고픈 상태였지만 병원밥이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하하하.

입원하자 마자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1시간마다 손가락에서 피를 뽑아 혈당수치를 측정하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엔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일꺼다.
우리는 체할 때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내곤한다.
그걸 1시간마다 한번씩 한다고 상상해 보자.
찌른데 또 찌르면 손가락 끝이 파랗게 멍들기 때문에 다른 손가락으로 돌아가면서 피를 내야 하는데 이걸 한시간에 한번씩 해야 한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이틀이 지난 밤이었다.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꿔서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놓은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변이 마려워서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야간 등만 켜진 병원 통로를 혼자서 걸어가는데 반대편 쪽에 유독 밝은 불빛의 병실이 보였다.
다른 모든 병실은 컴컴한데 유독 그 병실 한곳만 아주 밝았다.
나는 이거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라며 눈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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