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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2

한밤중에 일어난 일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고 눈을 비비며 불나방이 전등불에 모이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 환한 불빛이 빛나는 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병실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그 곳엔 의사와 간호사 한 분과 가족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과 30대의 남녀 한쌍이 물끄러미 침대를 바라보고 한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침대에는 60세쯤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저들은 왜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되지않아 그 중년 남성의 얼굴에 흰 천이 씌워졌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때서야 나는 이게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입원 이틀째 되는 날에 내가 있는 병동에서 한 분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틀 후 저녁때쯤 병실 옆의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가는데 그 곳에도 흰 천으로 뒤덥힌 한구의 시신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병동은 심각한 당뇨 환자들만이 있는 곳이라서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수 있었다.
나도 결국 저렇게 되고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돈을 다 주더라도 하루빨리 이 지옥 같은 병동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 이었다.
입원하는 동안 건강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런 통보

갑작스런 통보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담당의사가 그간의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인슐린을 투여하며 혈당치를 조절하는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내 눈은 아직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다행이라며 의사가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의사가 CT(Computed Tomography, 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한번도 그런 검사를 해본적도 없고 그게 어떤 이유로 하는지도 몰랐다.

의사선생님은
“아제상은 이틀동안 인슐린 치료를 받고 급격하게 혈당치가 내려가서 지금은 거의 정상인의 수준에 가까울 정도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 그래요? 천만 다행이네요. 아~ 이제 빨리 퇴원해도 되겠지요? “
나는 이제 더이상 매시간마다 손끝에서 피를 뽑아내는 고통을 견딜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게 말입니다. 이정도로 높은 혈당치가 인슐린을 투여한다고 해서 이렇게 단시간에 큰 폭으로 낮아지는 경우가 그렇게 흔치 않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요? 내가 워낙 튼튼한 사람이거든요. 언제쯤 퇴원해도 될까요?” 라고 희망에 차있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은
“이런 케이스에서 많이 발견되는 사례가 바로 췌장암인 경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아제상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것은 아니니 아직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암인지 아닌지 정밀 검사를 해야 하니 이틀 후 복부 부분에 CT 촬영 검사를 해야할 것 같네요.”
라고 조용히 말했다.

“암이라고? 암이라고요? 내가요? 정상치라면서요? 암이라뇨?”
갑자기 쇠망치로 내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것 같았다.
전날의 악몽과 함께 새벽에 보았던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중년 남성의 얼굴이 그 짧은 순간에 필름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는 통에 나도 모르게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얼굴은 경련이 와서 입술이 사르르 떨렸다.

의사 선생님은 당혹해하는 나를 보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검사해봐야 아는거지 지금 당장 췌장암이라는 것은 아니예요.
진정하시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치료받으시고 CT검사때까지는 식사 조절을 하게 될꺼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암이 확진된 것은 아니었지만 족집게 의사선생님이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만일 암이 확정된다면 게다가 그것도 5년이상 생존율이 10%밖에 안된다는 췌장암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그때서야 누구의 의지없이 두발로 걸어 다니는 내가 왜 이 중환자 병동에 입원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절망을 느끼다

절망을 느끼다

병실로 돌아와 보니 문 쪽에 있던 한 분의 침대가 그새 비어 있었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서 방금 전에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고 했다.
나는 그냥 침대에 주저앉아 한참동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맛있던 병원밥도 깔깔해서 넘길 수도 없었다. 그냥 만사가 다 귀찮았다.
“유서를 써야 되나”라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렇게 기나긴 이틀이 지나고 CT촬영은 40분정도에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의사가 부를 때까지 나는 그냥 죽은 사람마냥 침대에 누어서 천장만 쳐다보았다.
뭐..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만 해왔으니까 이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세계 여행이나 다니다가 더이상 몸을 움직이기 힘들 때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지않도록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살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다 내려놓으니 의외로 마음이 편했다. 어떤 결정이 나와도 뭐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장점이 바로 이런 점이다. 어차피 포기해야 할 거라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꿔버리는게 내성격이다.
다음날 오후에 담당 의사의 연락을 받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외의 결과

Photo by Tom Bradley on Unsplash

의사선생님은 이내 CT촬영결과를 내게 보여주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췌장암은 아니었네요. 안심해도 됩니다.
이정도의 회복 추세라면 앞으로 일주일 후에는 퇴원하고 통원치료 받아도 될 것 같네요.
간호사들 말에 의하면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데 이제 식사 꼬박꼬박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세요.”

나는 암이 아니라는 소리에 정말 그 자리에서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아미 씨~ 돌파리 같은 의사새끼. 암도 아닌데 괜히 비싼 CT검사까지 하게하고 몇일동안 사람을 지옥에 보내고 그래~ 이씨~ 돌파리 같은 의사새끼!”
다시 말하지만 속으로 한 말이다. 난 절대로 험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10일간의 병원생활이 끝났다.
나는 1년동안 통원치료를 받으면 집에서는 엄격한 식사관리를 하고 이틀에 한번씩 내 스스로 손에서 피를 뽑아 혈당치를 측정하며 지냈다.
손을 따는 게 처음에는 어렵지만 습관이 되면 아프지 않게 따는 요령도 생긴다.
그리고 지금은 두 달에 한번씩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받고 약만 복용하고 있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아마도 당뇨 완치약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콜라나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일주일에 한번 먹는 콜라와 아이스크림이 내게 행복을 더해준다.

이 당뇨병을 계기로 몇 년 후 나는 또 한번 내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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