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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0 – 하편

이 글은 2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녀와의 만남(続き)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결국 보험회사의 전체 부서 뿐만 아니라 전국의 영업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시스템으로 기능을 확장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되었다.
그로 인해서 다른 부서의 담당 고객으로부터 필요한 요구사항을 듣던 터였는데 이때 이 키쿠치(菊池)상이 자신의 팀을 위해 너무 많은 요구를 해와서 우리 팀의 개발일정을 확정할 수 없어서 조금씩 불만이 생기던 때였다.

어느 날, 키쿠치(菊池)상이 회의 도중에 뜬금없이 “아제상 비쥬얼 베이직 알아요? 라고 물었다.
나는 “모릅니다. 근데 그걸 왜 묻죠?” 라고 되물었다.
키쿠치(菊池)상은
“우리 시스템은 프론트엔드는 비쥬얼 베이직으로 개발하는데 설계하는 분이 그 언어를 모르면 어떻하죠? 언어부터 배우고 오세요” 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그동안 참고있던 것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키쿠치(菊池)상 설계해봤어요? 설계란 언어에 의존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개발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시스템 구조와 요건을 기술하는 제안서입니다. 모르면 좀 배우세요.” 라고 받아쳤다.

다른 팀의 고객이었지만 그래도 대기업 고객사의 촉망받는 여사원에게 프리렌서로 들어온 일본어가 아직 서툰 외국인이 쏘아붙이니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더라.
사실 그녀는 자신의 부서를 대표해서 요구사항을 조금이라도 더 반영하려 했던 것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인력과 스케줄 조정없이 다른 팀의 요구사항을 받다 보니 우리 팀의 설계가와 개발자들로부터도 불만이 일기 시작하던 때라 순간 나도 억제를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그렇게 쉬운 것 같으면 당신 팀의 개발자에게 맡기던가. 당신때문에 우리 팀이 지금 얼마나 피곤지 알아요?”
나는 그녀에게 냉정하고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그후로도 계속 그녀의 추가 요구사항으로 인해 우리 팀의 스케줄이 늦어지면서 우리 팀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듯이 높아졌 버렸다.
결국 나는 내가 이 일을 그만 두던지 저 여자가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달리고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메일을 보냈고, 결국 그녀는 프로젝트에서 떠나게 됐다.

악연과 인연은 종이 한장차이

악연과 인연은 종이 한장차이

그로부터 4년후 이 대기업 보험회사는 다른 대기업 보험회사를 흡수하면서 서로 다른 두회사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아주 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의 개발 팀장 중 한사람으로 다시 내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우리 팀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그녀가 왔다!!
원수는 외 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이게 뭔 일인가? 나중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우리 팀의 PM(Project Manager)가 되길 원했다고 하더라.
큰일이 난 것이다. 과거에 내가 쫓아냈던 여자가 우리 팀 프로젝트 매니저로 들어오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어떤 작은 책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 요건정의서나 각종 기획서를 평소보다 더 꼼꼼히 점검했다.
절대로 스케줄이 밀리지 않도록 일정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적을 두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절제를 못하고 남을 필요이상으로 공격하면 결국 언젠간 나 자신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번 경우를 통해서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키쿠치(菊池)상은 5년전의 일은 다 잊어 먹은듯 웃으면서 너무도 친절히 대해주는 것 아닌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라서 솔직히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니야! 것과 속이 다를지 몰라!
일본사람은 것과 속이 다르다고 하자나!
언젠가 빈틈을 노리고 허를 찌를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며 나는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3년간의 프로젝트가 다 끝나가도록 그녀는 내게 불필요하게 꼬투리를 잡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타 부서와의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나의 방패 역할을 해주며 의견 조율을 해주었다.

Photo by Jehyun Sung on Unsplash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녀는 자신의 팀을 위해서 헌신하는 리더 타입이었다.
명문대 출신들 뿐인 그 대기업 전산실에서 짧은 기간 동안에 선배 사원들을 훌쩍 제치고 빠르게 승진을 한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4년전에 그렇게 나를 귀찮게 했던 것도 자신의 팀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기능을 추가하기위해 그렇게 매달렸던 것이었다.
같은 팀에서 일을 해보니 그런 면이 더욱 더 그녀를 신뢰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항상 팀원들의 작은 변화도 체크하는 세심함마저 갖추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오~ 머리 잘랐네요. 잘 어울리는데요~”라던지,
“이토우(伊藤)상이 출산했다네요. 아기 선물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라던지 말이다.

어찌됐건 당시에 서비스 오픈 한달여를 앞둔 시점에서도 나는 그녀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날 아침도 그녀에게 품질 평가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었는데
“아제상 몸이 안 좋나요? 왜 그렇게 땀을 흘리죠?” 라고 묻었다.
“아? 예 더워서요. 제가 원래 몸에 열이 많거든요.”
설마 땀나는 걸로 꼬투리는 잡는 건 아니겠지? 라고 긴장하며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키쿠치(菊池)상은
“음, 아닌데~.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아제상은 이 시기에 땀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 . .
정말 괜찮아요?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서 진찰한번 받아보세요.” 라고 말했다.

뭐랄까?
나는 매년 걸리는 감기나 편도선염 외에는 다른 병에 걸려본 적이 없어서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6개월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게다가 난 아직 팔팔한 30대였다.

다만 두달 전부터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일과 게임때문에 피곤해서 그럴것이라고만 여겼다.
내 몸은 이미 위험하다는 신호를 계속 내게 보내왔는데 난 그걸 대수롭지않게 여겼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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