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currently viewing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2 –  상편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2 – 상편

이 글은 2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국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한국을 떠나는 날은 어머니가 아무래도 눈물을 흘리실 것 같아서 나오지 마시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배웅을 나가신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단 한번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조차 오지않으셨던 분이라 조금 의외였다.

공항에서 나를 일본으로 데리고 갈 A씨를 처음 만나고 나서야 비로서 한국을 떠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그대로 홀로 서 계시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워낙이 말이 없으신 분인데 그래서 더욱 더 쓸쓸해 보이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눈에 새기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인솔자 A씨에게 먼저 내 소개를 하니 A씨는 알았다는 짧은 한마디 뿐이였다.
우리는 좌석표도 서로 떨어져 있어서 나리타 공항에 내릴 때까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A씨가 상당히 과묵하신 분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우에노행 특급 전철을 탔다.
전철 창밖으로 비치는 풍경은 한국과 별로 다를바 없는 모습이였다.
스피커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일본어 안내 방송을 들으며 정말 이곳이 일본이 맞는건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첫날부터 꼬였다

첫날부터 꼬였다

그러다가 누가 내 어깨를 흔드는 느낌에 눈을 떴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사이에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였다.
눈을 떠보니 A씨는 다른 전철로 갈아타기위해 내려야 한다고 하며 먼저 전철 문쪽으로 걸어 나갔다.
이미 전철문이 열리고 있는 상태라 나도 허겁지겁 따라 나갔는데 A씨가 나를 보며 히쭉히쭉 웃었다.

“왜 웃으세요?” 라고 묻자, A씨는
“너 뭐 잊어버린 것 없냐?” 라고 말했다.
없는 것…. 없는… 아! 가방!!
나는 짐을 두개의 가방에 나누어서 가져왔다.
하나는 전철 선반 위에 올려두었는데 급하게 내리느라 깜박 잊고 선반에 가방을 둔 채로 내린 것이었다.
더군다나 선반에 몰려놓은 가방에는 생활비로 가져간 100만엔의 현금도 있었다.

눈 앞이 깜깜했다.
일본은 전철 맨앞 칸에 운전사가 타고 맨 뒷 칸에는 조수가 탄다.
맨 뒤에 조수는 문을 여닫고, 안내 방송을 하고, 전철이 역사를 벗어날때까지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지켜보는 역활을 한다.
나는 뒤에서 2번째 칸에 탓던터라 맨뒷칸의 조수가 보였다.
이미 전철문은 닫히는 중이였다.
나는 생각할 틈도없이 무작정 그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저기 저안에 내 가방요. 가방, 가방이 있다니깐요!”
외국이였지만 급할 때는 확실히 한국말이 무의식적으로 흘러 나왔다.
운이 좋게도 내 다급한 모습과 손짓을 보고 그 전철 조수는 전철문을 열어주었다.
서둘러 전철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가져나오는데 짧은 안내방송이 들렸다.
일본어라서 알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무사히 가방을 찾고 그 운전사 조수에게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A씨는 그런 나를 보면서 히죽거리며
“첫날부터 정신상태가 상당히 해이하네.
긴장좀 해~”
라고 말하곤 바로 뒤돌아 걸었다.
아~ 정말 뒷통수를 한방 날리고 싶었다.

불법취업자들과 생활하다

Photo by Asim Z Kodappana on unsplash

입국하는 첫날 그 소동을 벌인 후, 요코하마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였다.
방은 2개였는데 나이가 좀 드신 두 분이 한방에서 자고, 나를 포함한 5명이 한방에서 자게 되었다.
방이 세로로 좀 긴 방이긴 했는데, 어찌됐던 방안에서 남자 5명이 같이 생활한다고 상상을 해보라.
밤에는 6명이 나란히 붙어 잤는데 나보다 2살 어린 막내는 키가 커서 다리를 펴지못하고 자야했다.
게다가 아침에는 출근 시간에 맞춰 모두가 샤워를 끝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전쟁이였다.

더욱 놀랐던 것은 월급으로 17만엔을 받게 되었는데 방세를 일인당 6만엔씩 회사에서 깠다.
4대 보험은 없었고, 교통비도 내가 부담해야 했다.
결국 방세를 제하면 매달 10만엔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했다.
급여는 적었지만, 일본어를 배우면서 용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왔기에 급여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세는 내가 입사한 일본회사가 떼 먹은게 아니라 한국의 브로커 회사가 중간에 가로챘던 것이였다. 그 브로커 회사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데 한국의 개발자 커뮤니티 등에서 여전히 악명높은 회사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나를 제외한 6명은 모두 3개월 관광비자로 온 불법 취업자들 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3개월 동안 일을 하고, 관광 비자 기간이 끝나는 주말의 토요일에 한국으로 들어가서 일요일에 다시 일본으로 재입국하는 방법을 통해 일본에서 불법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왔던 A씨는 2년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불법 취업을 해오고 있었는데 1년을 더하면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국 브로커 회사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취업비자를 받고 들어오는 바람에 비자 발급 인원에 제한이 걸려서 A씨는 취업비자를 받을 기회를 놓쳤다. 결국 A씨는 다시 1년을 기약해야 했었다.
그래서 A씨는 나를 일본으로 데려올 때 그렇게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A씨는 나를 미워할게 아니라 그 한국 브로커 회사에게 화를 내야 하는데 내가 빼았아 간것같아 많이 힘들었었다고 심경을 토로했었다.
물론, 그 술자리 이후로 우린 좋은 관계를 유지할수 있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