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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4

2년간의 기나긴 휴가를 얻은 나는 처음 한달 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아침밥 먹고 헬스장가서 운동하고 사우나하고 점심 먹고 영화보고 저녁 먹고 게임하고 자는 단조로운 하루를 보냈다.

틈틈이 15년후 은퇴 이주할 나라를 찾기 위한 여행계획도 잡았다.
여행 후보지는 괌, 사이판,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6개국으로 추렸다.
후보지를 전부 남쪽 나라로 잡은 이유는 여름보다 겨울이 감기 같은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여름은 두터운 옷 같은 짐이 필요 없다는 점이였다.
각 나라마다 3주내지 두달정도 살아 보기로 했다

이주국가를 찾다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첫 여행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인 괌이었다.
물가는 동남아 지역에 비해 비싼 편이었지만 사람들이 여유로웠고 친절했다.
게다가 비록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영어권이고 미국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괌 체류중에 푸트코트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몇 분 만날 수 있어서 그분들에게 괌으로의 이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봤다.
괌에 사는 한국분들은 한결같이 정말 살기 좋고 여유로운 곳이라고 말하면서도 딱~ 1년정도 살기에는 좋다고 했다.

살기 좋다면서 왜 1년이냐고 물으니 괌이 너무 좁아서 두 달정도 살면 안 가본 곳 없이 다 돌아볼 수 있고 1년이 지나면 답답함을 느낀다고 한다.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이다 보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도 많은 비용이 드는 데다가 놀 곳이 별로 없어 일찍 퇴근해야 하고 집에서 할 일이 없으니 아이 낳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결국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괌과 싸이판은 일찌감치 제외 대상이 되었다.

동남아시아는 대부분 비슷했다. 유명 관광지나 호텔에서는 한국어보다 일본어 통역자가 많아서 일본어만 가능해도 상당히 편리했지만 영어 통역자 수에 비하면 그래도 미약한 수준이었다.
동남아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거리는 지저분하긴 했지만 호텔이나 도심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마음에 들었다.
태국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항상 미소 짓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느긋한 동남아 사람들을 보면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일본에 오래 산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이라 빨리빨리 문화에 젖은 한국인은 아마도 동남아 국가의 느린 생활에 적응하기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물가도 많이 싸서 일본에서 나의 한달 생활비라면 태국에서 제법 호화로운 생활을 해도 두달내지 세달정도 정도는 충분히 살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음식에 향신료가 너무 강해서 여행이 아닌 거주 목적으로는 내게 맞지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언어 소통 문제가 가장 컸다.
로컬 호텔은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없었고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도 생각보다 많지않았다.
관광지역이 아닌 로컬 쇼핑센터도 그랬고 무엇보다도 일반 음식점이나 거리에서는 한국어나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도 동남아 특유의 느긋함과 친절함 그리고 항상 미소 짓는 얼굴은 태국과 다르지 않았다.
태국보다 물가는 많이 비쌌지만 거리는 훨씬 깨끗했다. 뭔가 상당히 발전한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 사정도 태국보다 좋았으며 치안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 갈 일은 없었지만 은퇴한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는 고급 콘도를 찾아가보니 일본인 의사가 상주하는 병원도 있어서 의료수준도 태국보다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인접국가로 여행하기가 쉽다는 점과 태국과 달리 어느정도 영어가 통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의 필요성을 체험하다

영어의 필요성을 체험하다

현지 체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태국도 부유층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 이였다.
현지에서 한달을 살면서 친구의 소개로 부유층 사람들의 파티에 초대되었는데 정말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엘리트층은 어느 나라나 영어 교육이 필수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레이시아도 내가 만난 엘리트 층은 정말 영어 발음부터 네이티브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유창했다.
게다가 한 태국인은 내가 한국어와 일본어 밖에 못한다고 하자 일본에서 2년간 유학을 했다며 일본어로 말하는데 회화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정말 놀랐다.

1년에 걸쳐 여러 나라를 다녀온 내게 가장 피부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언어 문제였다.
관광이 아니라 남은 여생을 위해 이주할 계획이라면 현지인과의 소통이 아주 중요한데 그렇다고 말레이어나 태국어를 배우기에는 엄두가 나지않았다.

앞으로 10년후에 이 계획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라서 역시 현지어보다 영어 회화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아 들었다. 결국 노바학원 사태 이후 포기했던 영어 회화 공부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독쿄(獨協) 대학에서 영어 수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년간 대학의 영어 수업을 수강하기로 했다.

20년이상 영어를 놓았던 상태라 1년간 영어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유창하게 말을 할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외국인 앞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허예지면서 간단한 말 한마디 못하던 내가 1년뒤에는 더이상 외국인 앞에서 당황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시작은 추천영상 때문이었다

Photo by NordWood Themes on Unsplash

나는 개학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영어에 익숙해지도록 유튜브의 여러 영어 강좌를 보면서 나에게 맞는 영어공부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일본에 사는 한 한국인 유튜버의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떴다.
그 유튜브 채널이 바로 애니악TV였다.
일본 회사에 취업해서 일본인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애니악님과 회사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항상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새 나는 애니악TV의 팬이 돼서 라이브 방송을 빠지지 않고 보게 되었다.

그해 11월 어느 날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30대의 사진은 너무나도 많았는데 당뇨병으로 입원을 한 이후부터 40대의 사진은 별로 없었다. 마치 40대가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충분히 많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더 늙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지금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사진보다 영상으로 남겨두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이왕 남길 영상이라면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영상을 찍어서 공개해 볼까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바로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난 똑딱이 카메라도 없다. 카메라는 무거워서 휴대가 불편하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게다가 내 친구 중에 사진을 잘 찍는 카메라에 미친 친구가 있어서 내가 굳이 카메라를 살 이유가 없었다.
30대의 사진도 이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내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서 선물해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상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유튜버란 이 엄청난 일을 너무 쉽게 결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영상 촬영이라는 게 너무도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카메라 하나 켜 두고 평상시처럼 한 10분정도 떠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라고 생각했다.
이미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 왔었고 남들로부터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한다고 들어왔던 터라 썰 푸는 데는 정말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스마트폰을 앞에 놓고 말을 하려고 하니 너무나 어색했다.
친구를 앉혀 놓고 1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떠들던 내가 스마트폰 앞에서는 단 1분조차 끊지않고 계속해서 말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첫 영상은 20분정도 되는 영상이었는데 NG가 너무 많이 나서 이 영상을 촬영하는데만 2주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틈틈이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프리미어 프로의 편집 방법을 유튜브로 공부하면서 촬영에서 편집까지 20분짜리 영상을 만드는데 1달이 걸렸다.
어찌됐든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첫 영상은 20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영상을 올리기 몇일 전이였다.
그날도 애니악TV의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니악이 자신의 빰을 한대 딱! 치면서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애니악님은 말하는 중간에 “에~” 나 “음~”과 같은 말을 썼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아니 말하다 보면 말 중간중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경우 “에~” 나 “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거지 그게 뭐가 잘못된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공개를 앞둔 내 첫 영상을 다시한번 틀어보았다.
거의 모든 문장과 문장사이에 “에~”라는 추임새를 습관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뭐 당연한 거였다. 당시엔 스크립트조차 없이 무작정 스마트폰에 대고 두서없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애니악님의 라이브 영상을 본 후로는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는 TV의 뉴스나 토크 방송 사회자의 어투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런데 정말 하나같이 유명한 앵커나 사회자는 “에~” 나 “어~”, “흠~” 등의 추임새를 전혀 넣지않더라.

그제서야 내 말투의 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첫 촬영분을 공개하지 못하고 다시 재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의식적으로 “음~” 같은 추임새를 넣지않으려고 하다 보니 말을 이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결국 엄청난 NG를 내면서 재촬영을 마치는데 다시 2주가 걸렸다.

그렇게 또 편집을 마치고 유튜브에 첫 영상을 비공개로 등록한 후에 친한 일본 친구에게만 영상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로부터 한결같이 나온 평가는 내용은 좋은데 얼굴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보는 내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 긴장된 모습이 영상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영화나 드라마 제작할 때 배우들을 모집하면서 카메라 테스트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오는 울렁증은 그렇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카메라 울렁증은 남아 있다.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건 편집기술일 뿐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자연스러워 졌지만 지금도 영상한편 찍을 때는 상당히 많은 NG를 낸다.

초보유튜버의 고독과 좌절

초보유튜버의 고독과 좌절

일본친구들의 피드백을 받고나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서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영상을 찍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첫 공개 영상이 바로 2018년 2월4일 공개한 “일본에서 집구하기 UR주택편”이다.
감사하게도 애니악님이 손수 영상을 보시고
“내용은 유익한데 말이 너무 느리다”는 점까지 친절히 피드백을 주셨다.

말과 말사이에 추임새를 빼려고 무진장 노력했는데 이번에는 말이 너무 느리다는 단점을 알게 되었다.
정말 내가 왜 이놈의 유튜버를 시작해가지고 이 나이에 이 고생을 하는지 그 당시에는 백번, 천번 후회가 되었다.
20년동안 만지지않았던 포토샵도 다시 배워야했다. 무엇보다도 영상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다 보니 내가 어떻게 촬영되는지 볼 수가 없었는데 어떤 때는 20분정도 촬영하다가 확인해 보면 얼굴은 안 나오고 목과 가슴만 나와서 다시 촬영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혼자서 주절거리며 촬영하다가 “이거 미친거아냐?”라고 껄껄거리며 웃던 적이 한두번도 아니었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하고 한달동안 12편의 영상을 만들었는데 구독자는 고작 10명에 영상별 조회수도 10회 남짓했답니다.
“내 영상이 재미없나? 역시 얼굴이 잘 생겨야 하는 건가?”
고생하면서 만든 영상 치고는 영상을 봐주는 사람이 너무 없었다.
때마침 대학 영어수업이 시작해서 영상 촬영과 편집할 시간도 줄어드는 바람에 딱~ 영상 12개 올려놓고 유튜브를 한동안 쉬게 되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

초심을 잃지 말자

그런데 정말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영어 수업을 듣는 5개월동안 영상을 올린 적이 없었는데 구독자가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었다.
한달동안 12편이나 올릴 때는 구독자가 10명도 안되더니 5개월동안 한번도 영상을 올리지않았는데 130명이나 채널 구독자가 늘어난 것이다.
새 영상도 안올라 오는 채널을 도대체 왜 구독해주는지 난 정말 궁금했다.
마침 1학기 영어수업도 끝나서 여름방학이 시작된터라 5개월만에 왜 영상도 안 올라가는 내 채널을 구독해 주는지 구독자님들께 물어보는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그 영상에는 영상이 도움이 돼서 구독을 했다는 댓글이 몇개가 달렸다.
그때서야 비로서 뭔가 소통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 내 영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것으로 됐다.
어차피 내가 개그맨도 아니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닌데 몇 천명 몇 만명의 구독자가 생길리도 없고,
애초에 지금의 내 모습을 남기려고 한 일이니 구독자에 연연하지 말고 시간 나는 데까지 한번 해보자!” 라고 새롭게 마음먹게 되었다.

영상을 올리면 내가 일본에 산다는 이유로 많은 분들로부터 취업에 관한 질문이 많이 왔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구독자님들의 질문내용을 위주로 일본 취업과 면접에 관한 영상을 주로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일본에서 면접관을 많이 해본 경험자로서 내 경험을 올린 영상이기는 한데 영상 내용이 정말로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효과가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 말이다.

결국 나는 또 한번 일을 저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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