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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5 – 상편

이 글은 2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통의 전화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쿠로다(黒田)상은 처음 접한 한국인인 나를 통해 조금씩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 휴가때 한국으로 2박3일의 짧은 여행을 갔다왔는데 한국인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생각보다 좋은 여행이 되었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IMF의 어렵고 혼란한 시기였지만 상점과 호텔 사람들의 표정은 아주 밝고 자신감에 넘쳤었다고 했다.
쿠로다(黒田)상은 한국여행을 계기로 더욱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한국관련 영화나 음악을 찾아보았지만 일본어 자막이 있는 영화 타이틀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은 1997년까지 한일간에 문화 교류를 허가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일본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기 어려웠고 한국도 일본 문화를 접하기 어려웠다.

당시만해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던 소니 워크맨이나 아이오, JVC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일본 전자제품은 전부 밀수품이였다. 젊은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기쁨이였던 때였다.
1998년은 김대중 정부가 일본의 문화를 개방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일본어 자막이 달린 한국의 컨텐츠가 생각보다 적었었다.
그래서 나를 통해 한글을 배우고자 연락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제 한달 후에는 비자기간이 끝나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한글을 가르켜 줄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쿠로다(黒田)상은 내 이야길 듣고 어쩔줄 몰라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다.
자신이 한 일은 아니지만 같은 일본인으로서 그런 비상식적인 회사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로인해 마음 고생을 한 내게 너무 죄송하다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경험을 했을 뿐 대부분의 일본 회사는 그렇지않다면서 다시한번 일본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재차 물었다.
물론 나도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타국에서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이라 일본에서 일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비자도 한 달여밖에 남지않아서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귀국하면 아마도 또다시 일본에서 일 하려고 하지는 않을꺼라는 말까지 덧 붙였다.

쿠로다(黒田)상은 전화로 이야기하기보다 일단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제안을 했다.
사실 나도 일본어가 그렇게 능숙한게 아니라서 전화로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 인사도 할 겸 우리는 돌아오는 토요일에 긴자(銀座)의 한 킷사텐(喫茶店 : 일본식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킷사텐은 일본식 커피 전문점인데 주로 중장년층이 이용하는 곳으로 한국의 고급스런 다방의 이미지이다. 커피가격도 비싸서 10대20대의 젊은사람은 잘 안가는 곳이다.

첨언을 하자면 현재 쿠로다(黒田)상은 정년퇴직 후 연금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내가 동경에서 이 곳 사이타마로 옮긴 이유도 쿠로다(黒田)상으로부터 신축 UR맨션이 생긴다는 언질때문이였다. 쿠로다(黒田)상이 이 근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로다(黒田)상은 거의 두세달에 한번씩 해외 여행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가끔 만나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만날 때마다 나는 쿠로다(黒田)상의 다음 여행계획을 듣곤한다.

또 한번의 선택

또 한번의 선택

쿠로다(黒田)상은 계속 내게 일본에 남아줄 것을 부탁했다.
이왕 일본에 왔으니 진짜 일본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였다. 내가 허락만 한다면 회사의 협력 업체에 부탁해서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은 상처투성이 였던 내게 솔찍히 그렇게 반갑게만은 들리지 않아서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쿠로다(黒田)상의 한국여행은 어땠는지 알려 달라며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그렇게 두시간 가량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쿠로다(黒田)상은 내 두손을 꼭 쥐고는
“이르본은 그로케 나쁜나라가 아니므니다. ” 라며 서툰 한국말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인간은 죽을때까지 세번의 큰 선택의 기회가 찾아 온다고 했다.
그 때의 선택으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날 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만류하던 일본행을 고집하더니만 결국 1년도 못채우고 실업자가 되서 돌아갔을 때, 주위사람들은 대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얼마나 실망하실까..
피붙이도 아닌 단지 3개월간 옆자리에 있던 말도 안통하던 외국인을 위해 저리도 애써주는 쿠로다(黒田)상과 이케부쿠로의 그 사장놈이 몇번이고 눈앞에서 교차되었다.
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Photo by Sean Pollock on Unsplash

그리고 이틀 후, 나는 쿠로다(黒田)상에게 일본에서 다시 일 할 의사를 전달했다.
그 다음주에 나는 쿠로다상의 소개로 일본의 중규모 IT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결국 시나가와에 있는 새로운 회사에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이 회사는 상당히 많은 중국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직접 고용은 아니지만 한국인 인력 파견 회사와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국인도 몇명 보긴했지만 같이 일한 적은 없었다.

취업비자 갱신 수속도 외국인을 많이 고용하는 회사여서인지 비자기간이 끝나고 일주일 후에 갱신허가가 떨어졌다.
참고로 비자 갱신 신청중에는 비자기간이 끝나도 결과가 나올때까지 일본에 머무를 수가 있다.
그렇게해서 나는 3년짜리 취업비자를 받게 되었다.
확실히 회사 규모가 크다보니 비자기간도 당시로서는 제일 긴 3년으로 갱신되었다.
급여도 17만엔에서 월평균 35만엔까지 거의 2배나 치솟는 어마어마한 버프를 받게되었다!

비록 첫 취업 1년간은 정말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지만, 2년째부터 내 연령대의 일본사람과 비슷한 급여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럴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내 회화 능력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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