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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6

멘토를 만나다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나는 새 직장에서 첫 파견지로 쿄에이(共栄)생명이라는 지금은 없어진 보험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파견을 나갔다.
이곳에서 나는 수납 업무를 담담하는 팀에 배속되었는데 사카이(酒井)라는 이름의 남성 팀장의 옆자리에 안게 되었다.

사카이(酒井)상은 40대 후반의 술과 가무를 좋아하는 1명의 딸을 둔 전형적인 일본 중년 남성이다.
그도 젊었을 때는 꽤 이름을 날리는 개발자였다고 들었다. 그는 오래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렌서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 사카이상은 팀장이라서 그가 직접 코딩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설계 능력과 분석 능력은 많이 뒤쳐지는 사람으로 보였다.
유지보수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신규 개발에 들어가면 설계가 잘못되서 도중에 다시 처음부터 재설계하는 경우를 몇번 봤다.

그렇지만 사카이상은 그런 자신의 단점을 화려한 사교술과 인맥관리를 통해 큰 문제없이 넘기곤 했다.
쿄에이(共栄)생명보험 회사에서 일 한지 1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날도 사카이상은 회의가 끝나 후 한숨을 내쉬며 옆자리에 앉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업무가 너무 복잡한데다 담당자의 요구 사항도 많아서 어디부터 건드려야할지 정리도 안돼서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기회가 찾아오다

기회가 찾아오다

당시 나는 프로그래머의 위치였는데 이미 개발에 투입되야 할 시기였지만 외부 설계서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라 나는 하루하루를 하는 일 없이 놀고먹으며 월급만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프로젝트의 회의 자료를 읽었는데 복잡한 업무이기는 했지만, 만일 내게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일본인은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경향이 강해서 상대방이 도와달라고 하기전에 손을 내밀기를 주저한다.
사실 팀장이 외국인 프로그래머에게 도움을 청 할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카이상에게 내가 도울 일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사카이상이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
사실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기 보다는 내가 아는 일본어 단어가 워낙 적었기에 어려운 말을 쓸수가 없었다는게 맞을듯 하다.

사카이상은 설명을 듣고는 좋은 생각이라고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실례가 안된다면 이 부분의 외부 설계를 제가하면 안될까요? “
라고 조심스레 사카이상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보았다.
“한번해볼래요?” 라며 사카이상은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나는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운것이 아니고 독학으로 배웠기 때문에 문법이나 표현이 올바르지 않을수도 있었다. 그래서 설계서 초안이 만들어지면 문법 첵크와 잘못된 표현등을 사까이상이 교정해 주는 걸로 허락을 받았다.

이게 바로 일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 하다가 처음으로 맏게 된 설계 업무였다.
나는 몇 일간 잔업을 하면서 30여쪽 분량의 외부 설계서를 작성해서 사카이상의 검수를 받았다.
뭐, 예상은 했지만 잘못된 문법, 잘못된 한자, 잘못된 표현등이 빨간 형광펜으로 A4용지에 빼곡히 칠해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 아직 문서 작성은 무리구나.” 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오후에 발표할 자료인데 내 주제도 모르고 섯불리 달려들어 사카이상에게 폐를 끼친것 같아 너무 죄송했다.

첵크가 끝나자 사카이상은 나에게
“오늘 저녁 이후에 약속 있어요?” 라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사카이상은
“좋아요. 그럼 오늘중으로 이 서류를 다 고칠꺼니까 야근합시다.
물론 왜 그 문장이 틀렸고 왜 잘못됐는지는 먼저 설명을 듣고 고치게 될꺼예요.
그럼, 우리 커피 한잔하고 시작할까요?”
라며 사카이상은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그날 사카이상은 내 옆에서 빨간 형광펜으로 첵크된 부분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나는 직접 내 손으로 수정을 해 나가면서 따로 지적된 부분은 메모해 두었다.
작업은 그날 밤11시가 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다음날 오후, 사카이상은 회의가 끝난 후에 내게 커피 한 잔을 건네주며 밝은 표정으로 덕분에 발표가 잘 진행되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사실 나는 아이디어만 낸 것일 뿐, 오류 투성의 문서를 제대로 된 문서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사카이상의 가르침 덕분이였는데 그의 칭찬에 나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설계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다

Photo by Matt Duncan on Unsplash

사카이상은
“문서 작성은 많이 해보지 않으면 일본인이라도 절대로 늘지않아요.
내일부터 나와 함께 회의에 참석합시다.
회의록과 각종 필요한 문서작성도 전부 아제상이 해야되요.
물론 서류 첵크는 이번처럼 내가 해줄것이고 앞으로는 작성자 이름을 아제상 이름으로 써도 좋아요.”
라고 말했다.

난 정말 뛸듯이 기뻤다.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기뻤다.
내가 드디어 설계가로서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첫발을 내딧을수 있게 되었다는 것 또한 기뻤다.

그렇지만 나는 이내 냉정을 되찾고, 설계서의 이름은 내 이름이 아닌 사카이상 이름으로 쓰겠다고 했다.
나는 아직 혼자만의 힘으로 문서 작성을 할 만큼 일본어 문서 작성 능력이 높지도 않았으며, 만일 회의중에 질문을 받았을 때 완벽하게 일본어로 대답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 경우 처럼 내가 설계를 하고 사카이상이 최종검수를 거쳐서 사카이상의 이름으로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부탁했다.
나의 분석 능력과 설계 능력을 사카이상에게 제공하고 사카이상은 내게 좀더 완성된 문서 작성법을 알려주고, 설계할 기회를 제공하니 서로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니겠는가?

1년 후, 즉 일본취업 3년만에 나는 혼자서 일본어로 상층부 관리자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을만큼 업무 회화가 상당히 늘었다.
아울러 서류작성 능력도 크게 향상 되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사카이상이 준 이 기회가 그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서 작성의 어려움

문서 작성의 어려움

일본에 취업한지 얼마 되지않는 분들은 일본식 문서 작성과 메일 문서 작성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럴때는 너무 혼자서 고민하지말고 주위의 가까운 일본인 동료에게 문서를 미리 보여줘서 일본어 첵크를 받아볼 것을 추천한다.

일본에서 일한다면 외국인이라서 봐 주고 하는 것을 바래서는 안된다.
일본인과 같은 급여를 받고 싶다면 같은 업무 수준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
때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작은 실수로 인해서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고, 상사로부터 미움을 살 수도 있다.
이렇게 되지않도록 문서나 메일을 보낼 때는 반드시 일본인 동료에게 문법이나 문장 표현을 미리 첵크받는 것이 좋다.
물론, 옆 동료가 바쁘지 않을 때 부탁하는 센스도 갖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실 일본취업 3년째부터는 한자 공부나 회화 공부도 다 때려쳤다.
생활하는데 어려움도 없고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나 회의중에 의견 교환에서도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기에 더이상 한자 공부를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재미도 없는 한자책을 계속 반복해서 보니 지루하기도 했고 돈도 좀 더 많이 벌 수 있었기때문에 이 정도면 됐다며 좀 거만해진 탓도 있었던것 같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살만해 지니까 초심을 잃은 거다.

난 그 이후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어 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
일본어 발음 연습도 일본 취업후 딱~ 3년째 되던 때와 별다른 차이점도 없고, 단어도 딱~ 그만큼만 안다.
물론 오래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습득하는 단어들도 꽤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한자를 직접 쓰지 못한다

지금도 한자를 직접 쓰지 못한다

당연히 나는 지금도 손으로 직접 한자를 쓰지 못한다.
일본와서 2년간 한자를 보고 읽고 뜻을 아는데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직업이 IT분야라서 모든 작업은 PC로 하기때문에 내가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일년에 한 번쯤 있을까 말까하기에 더욱 손으로 직접 한자를 쓸 기회가 없었다.
PC가 있으면 발음대로 입력하면 쉽게 한자 입력이 가능한데다가 예쁜 글자로 인쇄 할수 있기때문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여느 일본인 못지않은 문서 작성 능력을 가졌다고 나름 자부한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사카이상의 그림자 설계가가 되었다.
내 이름을 감춘 채로 사카이상 대신 설계서를 작성하면서 시스템 엔지니어로의 실전 연습을 하게 되었다.
물론 사카이상과 나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였다. 아마도 금요일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카이상은 저녁에 약속이 없으면 신바시에서 같이 술한잔 하지않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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