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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8

유혹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내가 회사를 기무라(木村) 대표에게 넘겨준 이후로 회사는 한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고객사 임원과 기무라(木村)상이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고객사 임원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무라(木村)상은 우리회사는 프로그래머는 없고 시스템 엔지니어만 있다고 말했으나 고객사 임원은 회사를 키우려면 회사 규모를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프로그래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객사 임원은 고객사에서 받아줄 수 있으니 일단 프로그래머를 10명정도 확보해 보라고 요청했고 기무라(木村)상은 고객사에서 받아준다는 말에 3년~5년정도 경력의 프로그래머를 고용했다.
새로 고용한 프로그래머들은 반년동안 고객사 프로젝트에 참가했기 때문에 그만큼 매출도 증가했고 회사규모도 40%나 커졌다.

재미를 본 기무라(木村)상은 좀더 욕심을 내서 또다시 3년~5년 경력의 프로그래머 11명을 추가 모집했다.
이들도 같은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테스터로 참가하게 되어 회사 매출은 비약적으로 높아져갔다.
이듬해의 결산에서는 작년 매출액의 2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대기업 파견의 경우 신규 개발 프로젝트가 끝나면 프로그래머는 거의 대부분 철수하게 된다.
고급 시스템엔지니어만 일부 남아서 유지보수팀에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반년에서 1년정도 관리 지원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새로 고용한 20여명의 개발자들도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사로 철수해서 대기하는 상태가 되었다.
영업을 거의 해본적이 없는 기무라(木村) 대표는 계약서 한 장 없이 고객사 임원 말만 믿고 많은 사원을 고용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고객사 임원으로부터는 다음 프로젝트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어찌됐든 개발자들의 월급은 계속 지급되어야 했기에 앞으로 회사를 상장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 두었던 회사 준비금을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런 상태가 1년 동안 지속되었다.
회사 준비금은 바닥을 보이게 되었지만 기무라(木村)은 고객사 임원의 말만 믿고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결국 회사 유지를 위해 퇴직금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리고 파산

그리고 파산

신생 IT 회사는 잘 나갈 때는 정말 무서운 줄 모르고 급성장하지만 한번 내리막길로 떨어지면 헤쳐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중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이다.
다른 모든 것은 줄일 수 있어도 사람을 줄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원인도 바로 사람이다.

나도 15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고객사 대표들로부터 프로그래머를 고용해달라는 부탁과 유혹을 자주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일을 받아올 만큼 내 영업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계속 일을 하고 싶었지 매일 영업하러 밖으로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적은 인원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많은 연봉과 높은 회사 신뢰를 얻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몇몇 신규 개발 업체도 급하게 프로그래머를 늘리다가 자금사정이 나빠져서 돈을 빌려 막다가 결국 파산하는 회사를 본게 한두번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기무라(木村) 대표에게 회사를 넘겨줄 때도 우리는 컨설턴트 회사니 절대로 10년이하의 개발자는 들이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결국 기무라(木村) 대표의 욕심으로 인해 자금사정 악화로 파산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난달에는 그동안 사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기위해 퇴직금을 써버려서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이 파견지의 업무를 중단하고 본사로 돌아와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19년동안 일해온 사람들이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 하니 화가 날만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Photo by Daria Nepriakhina on unsplash

3년동안 벌어진 일을 들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기무라(木村) 대표도 묵묵히 머리를 숙여 테이블의 물컵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무라(木村)상 입사한지 2년정도 밖에 안된 신입들은 그렇다고 해도 19년간 일해온 분들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퇴직금을 지급할 다른 방도는 없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기무라(木村) 대표는 그동안 회사 유지를 위해 이미 자신의 집도 팔아서 월세에 살고 있는 처지였으며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기위해 자신은 다섯달동안 월급 없이 무보수로 일 했다고 했다.
결국 지난주에 회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고 사원들에게 각자 새로운 직장을 찾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주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사무실 문을 닫기 전에 창업자였던 내게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심각한 정도였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나는 화가 나서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기무라(木村) 대표는 이전에 이미 회사로 복귀할 수 없냐는 말을 한번 한적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이 없다고 해서 진작에 포기했다고 했다.
작년 여름에 그런 전화 연락을 받은 기억은 있었으나 설마 그런 심각한 상황에 처한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미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얻은 2년간의 장기 휴가 보내던 터라서 그 말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냥 예의상 그렇게 말하나보다 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때 기무라(木村) 대표에게 자세하게 물어보았다면 일이 이지경에까지 다다르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퇴직금은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방법을 찾아봅시다.
일단 사정은 알았으니 밥이나 먹읍시다. 먹고 힘 내야죠. 찾아보면 해결할 방법이 있겠지요.”
속이 상해서 먹는 식사는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그날따라 술은 왜 그렇게도 쓰던지 우리 둘은 술 몇 잔에 금방 취해 버렸다.

마지막 인사

마지막 인사

그날 밤 늦게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든 회사였다.
15년간을 지켜온 회사인데….
내 모든 젊은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회사인데 ….
이제 일주일 후면 없어지고 만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않았더라면 회사가 이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자책감도 들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않았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었을텐데라는 죄책감도 들었다.
나 하나만 편해지려고 했던 이기적인 결단이 결국 이런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고야 말았던 것 같았다.
회사가 없어지면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인생도 없어지고 말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다시 기무라(木村)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우선 이번주 토요일에 모든 사원들을 회사로 불러주세요.
일단 사원들의 일자리부터 해결해 보도록 합시다.”

토요일 아침 일찍 3년만에 처음으로 회사 사무실을 향했다.
기무라(木村) 대표는 이미 일찌감치 와 있었다.
책상도 그대로였고, 커튼도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모니터가 더 많아졌다는 것뿐이었다.

얼마안있어 낫 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시간여가 지나자 15명으로 널럴했던 회사 사무실이 꽉 차버렸다.
기무라(木村) 대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내 소개를 했다.

나는 창립자로서 이렇게 된데 대해서 먼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시스템 엔지니어에게는 현재 일하고 있는 고객사에서 계속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할 수 있도록 힘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젊은 개발자 직원들에게는 내가 그들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를 추천할 수는 없지만 취업 상담을 해주겠다고 했다. 젊은 개발자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많기 때문에 꼭 좋은 회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는 다시 내가 인수하게 되며 이 회사는 파산이 아니라 잠시동안 기나긴 휴업을 하게 됩니다.”
“제 사비를 털어서 전사원의 퇴직금의 일부를 지급하겠습니다.”
“내가 부자가 아니라서 여러분들 모두의 퇴직금을 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재직 년수별로 최대 80%에서 최소 50% 정도까지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회사가 다시 일어설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제 회사로 와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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