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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7

기쁨과 불안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2018년12월25일.
Offer Letter를 받은 나는 벅찬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50이 넘은 나이에 생각지도 못한 채용 합격 통지에 적지 아니 놀랐다. 아직도 나를 인정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날 밤은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밤새 술을 마시며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물론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말이다.

다음날 아침. 대부분의 친구들은 바로 회사로 출근했는데 한 명은 과음으로 술이 덜 깬 탓에 그날은 쉬겠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넌지시 내 Offer Letter를 보여주었다.
친구는 조금 놀란 눈치로
“아니 이쪽 일은 더 이상 안 한다고 쉬겠다고 하더니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 그만둔 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그동안의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사인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다.
그 친구는 “합격했는데 당연히 사인해야지” 라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이 직책이면 최소한 10년 정도는 일해야 하는데 앞으로 이쪽 분야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라며
마음이 바뀐 이유를 물었다.
사실 나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려서 이 친구의 의견을 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내가 만일 30대나 40대라면 회사의 명성도 있으니 당장이라도 사인을 하겠지만 이미 50이 넘은 내게 회사의 명성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할 계획도 없었다.
앞으로의 노후계획을 생각하던 중에 어쩌다 보니 면접을 보게 되었고 예상치 않게 운이 좋아서 얼떨결에 합격 통지서를 받은 상태라서 나 역시 고민이 되던 터였다.
게다가 애초에 장기휴가를 갖으면서 앞으로 5년이상은 개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감당할수 있겠어?

Photo by sydney Rae on Unsplash

4차면접때 인사과 부장은 입사하면 고객사 대기업 담당 부장 밑으로 발령이 나게 될 예정으로 2년후에는 그 부장자리에 내가 앉게 될 거라고 했다.
결국 고객사 대기업 담당 부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위치의 내가 3년후에 회사를 그만둔다면 이 회사에도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고 고객사에도 커다란 폐를 끼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친구는
“아니! 왜 쓸데없이 면접은 봐서 합격을 하고 그런 고민을 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설마 내가 4차 면접까지 통과할 줄은 몰랐다.
길어봤자 3차 면접에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어 놓고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솔직히 오랫동안 일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준비되지않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입사를 포기한다면 회사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나를 위해 수고했던 에이전트를 볼 면목이 없었다.
내가 입사하면 그 에이전트는 회사로부터 최소한 300백만엔의 커미션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나로 인해서 그것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릴 테니 말이다.

그 친구는
“결정은 어차피 아재상이 해야 하는 거지만 5년안에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라면 아예 입사를 포기하는 것이 회사와 고객사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 라고 말했다.

결국 고민한 끝에 이틀후에 에이전트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입사포기 의사를 전했다.
에이전트는 결정하기까지 한달여가 남아있으니 새해를 보내고 그래도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다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결국 나는 2019년 1월10에 최종적으로 입사를 포기했다.

나를 위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에이전트와 나에 대해 분에 넘치는 평가를 주신 면접관과 입사를 허락해 주셨던 회사에 감사하고 정말로 죄송한 마음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이렇게 굴러 들어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차고 많은 분들에게 폐를 끼쳤으니 당연히 다음 수순은 내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인생경험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한통의 전화

한통의 전화

2019년 새해 첫 해외여행 계획을 짜고 있던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대표로 있던 회사의 기무라(木村) 대표이사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아~ 기무라(木村)상 오랜만이예요. 회사일은 잘되고요?”
기무라(木村) 대표이사는 보통때와는 달리 조금 어두운 목소리로 다음주에 회사를 방문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니 무슨일 있어요? 아~ 1월이니까 신년 기념식인가요?
아이~ 이젠 대표도 아닌데 내가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우리끼리 술이나 한잔하죠?” 라고
나는 가볍게 기무라(木村) 사장의 의중을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무라 사장으로부터 회사를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니 어쩌다가 그지경에까지….”
나는 차마 말문을 잊지 못했다.
내가 사장직을 물려 준지 겨우 2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그 때만해도 회사 자본 준비금도 넉넉해서 왠만한 불경기라도 이겨낼 수 있었는데 겨우 2년 정도에 회사가 문을 닫는 다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일본 경기가 좋은 지금 이시기에 회사가 문을 닫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회사를 넘겨줬다고 해도 15년간 내 열정과 땀과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회사였다.
아무래도 전화로 끝낼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 날 저녁 키타센주(北千住)역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이 드문 조그만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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