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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4

두번째 파견지는 이케부쿠로였다.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어느덧 일본으로 이주한지 반년이 지났다.
6개월이 지나니 이제 일본인들이 하는 말을 대충 이해할 정도가 되었지만, 아는 단어가 별로 없어서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토교미쯔비시 은행에서의 6개월간의 첫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온 후 우리는 곧바로 다음 파견지의 면접을 보게되었다.

그 회사는 이케부쿠로(池袋)의 선샤인 빌딩 근처에 있었는대 직원이 7명 정도의 아주 작은 회사로 일본의 한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의 포스 데이터를 집계해주는 아웃소싱 회사였다.
면접에는 6명이 가서 그중 2-3명만을 뽑는다고 했다.

우리는 차례로 그 아웃소싱 회사 사장과 면접을 하게되었다.
사장은 면접을 시작하자마자,
“우리회사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습니다.”
“지난번 중국인도 4달만에 못견디고 나갔어요. 여러분들은 잘 참아야만 합니다.”
라고 너무도 당연한듯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거 미친놈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아니 회사 자랑할께 없어서 외국인 차별을 자랑이라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을 하는지 난 이해할수 없었다.

“전 일본의 좋은점을 배우기위해 온것이지 나쁜점을 배우기 위해 온것이 아닙니다.
전 돈을 목적으로 일본에 온것도 아닙니다.
저는 차별이 있는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 없으므로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라고 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후 면접실을 나갔다.
사장은 좀 놀랐는지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바로 회사로 돌아가서 사장에게 지초지종을 말하고 다른 회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그런데 회사 사장은 그래도 코딩테스트는 하라고 종용했다.
아니 안가겠다는데 왜 코딩테스트를 해아하냐니까 형식적인 것이니 회사를 생각해서 코딩테스트는 보라고 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테스트를 거짓으로 치룰수는 없기에 결국 나는 성심껏 테스트에 응했다.

그결과 면접을 본 6명 중에 나와 나보다 3개월 늦게 일본으로 입국했던 정씨가 합격을 했다고 통보가 날라왔다.
나는 사장에게 약속과 다르다며 안가겠다고 했으나 사장은 그래도 붙었으니 한번 일을 해보라고 설득했다.
심지어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정씨도 같이 떨어질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나는 정씨때문에 이 조그만 파견회사에서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정씨는 나보다 4살위로 다부진 체격에 친절하고 다정한데다가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한방에 5명씩 지내는 요코하마의 숙소가 싫어서 한달에 두세번 정도 주말마다 내 집에 와서 자고 갈정도로 우리는 꽤 친한 사이였다.

처음 겪은 외국인 차별

처음 겪은 외국인 차별

사실 면접 때의 사장의 말이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실제 일을 해보니 몇가지를 빼고는 특별히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은 들지않았다.
회사에는 두가지의 주의사항이 있었다.
업무중에 음료수를 사러가면 안된다는 것과 점심시간 끝나기 10분전에 반드시 업무복귀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음료수를 서너개씩 사가지고 출근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밖에 나가서 음료수를 사오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를 관리하는 C상에게 저 사람들은 왜 음료수를 사러 밖으로 나가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C상은 웃으면서
“응? 그건 너희 외국인들만의 규칙이야. 일본인은 상관없어! ” 라고 했다.
아… 이게바로 그 외국인을 차별한다는 거였구나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뭐 솔찍히 아침에 음료수 몇병 사오는 거를 그렇게 큰 차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달이 다되가던 어느날의 일이였다.
C상이 오늘 회식이 있으니까 빨리 끝내고 정리하라고 했다.
이전부터 정씨와 나는 환영회도 안열어준다고 좀 섭섭했는데, 한달이 지나서 회식을 한다니 솔찍히 너무 조급해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이미 일을 끝낸 직원 몇명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한번 배터지게 먹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정씨와 나는 옆에서 같이 기다렸다.
얼마안있어 C상이 나왔다.
C상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대뜸
“어? 아제상과 정상은 왜 여기 남아있는거야?”
라고 물었다.
“네? 오늘 회식이라고 해서 같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나는 뜬금없는 소리에 농담을 하는줄 알았다.

그런데 C상은
“회식은 일본인들만 하는거야. 우린 외국인과 회식같은거 안해”
라며 깔깔깔깔 웃었다.
그러자 옆에있던 일본인 A상이 C상을 나무라며 우리에게 미안하다거 말했다.
회사 규정이니 우릴 원망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뭐 지례짐작으로 확인도 않고 따라나온 우리가 잘못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내 자신이 초라하고 화가나서 이런 수모를 격어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우리 둘은 가까운 선술집에서 그회사 사장놈과 C상을 안주삼아 꼭꼭 씹어먹으면서 밤 늦도록 고주망태가 될때까지 술을 마셨다.

사건이 터지다

사건이 터지다

그렇게 두달여가 지난 어느날 점심시간의 일이였다.
이회사 사장은 야동을 즐겨보는데 그래서 이회사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야동을 사장에게 상납했다.
C상은 사장이 좀더 색다른 야동을 찾는다며 자신도 소재가 바닥났다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나는 좀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 미국의 유명한 야동 사이트에 대한 예기를 해주고 그곳에서 무료로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줬다.
이 일이 나중에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C상은 영어 홈페이지는 잘모르니까 자신의 PC에서 직접 접속해서 영상을 내려받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실 회사에서 성인사이트를 접속한다는게 꺼림직하기는 했지만 회사 직원의 허가를 받아서하는 것이니 별 문제는 없을꺼라 생각했다.

접속하자마자 C상을 비롯한 몇명의 직원들이 몰려들어서 탄성을 질렀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심봤다!” 뭐 이런 표현이 되지않을까?
나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일로 그들과 좀더 좋은 관계가 되길 약간 기대했다.

그렇게 그 주가 지나가고 토요일 아침이였다.
우리 회사 사장이 급하게 나와 면담할 일이 있다해서 내 아파트 근처의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장은 통역관 K씨와 함께 좀 심각한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은 내게 그 이케부쿠로의 파견 회사로 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회사의 다른사람의 PC를 이용해서 야동사이트를 몰래 검색했다는 이유로 경고조치로 6개월간 내 월급의 50%를 삭감하겠다고 말했다.
아니~ 급여가 17만엔 밖에 안되는데 이걸 반으로 삭감한다면 9만엔으로 한달을 살라는 말이다.
이게 말인가? 똥인가?

세상에 남의 회사에서 그것도 다른사람의 PC로 야동을 보는 미친놈이 어디 있겠느냐며 나는 사장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사장은 내 말보다는 그 파견 회사말을 믿더라.
직감적으로 이 회사는 더이상 내게 도움이 안되는 회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다

나는 K씨에게 지금부터 내가하는 말을 정확하게 그대로 사장에게 통역하라고 했다.
“나는 직원을 믿지못하고 직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장 믿에서는 일을 할수 없습니다.
어차피 2달후면 취업비자 기간도 끝나니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난달과 이번달의 월급은 안받아도 되니 그 파견회사 손해비용으로 쓰세요.
그 동안 신세많이 졌습니다. “
나는 통역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더이상 그들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정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였다.

큰 마음을 먹고 해외 취업을 했는데 고작 9개월만에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슬펐다.
그날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저녁 늦게까지 회사와 통역관 K씨로부터 상당히 많은 전화가 걸려왔지만 나는 어떤 전화도 받지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에 정씨가 찾아왔다.
정씨는 자신을 봐서라도 함께 일을 하자고 부탁했지만 나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날 정씨를 봐서 업무 인수인계만큼은 이틀간 무보수로 해주기로 약속을 하고 월요일에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 내 눈치를 살피는 그 회사 직원들의 모습이 자주 느껴졌다.
다른 외국인과 달리 머리를 굽히지 않은 내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았다.
얼마 안있어 C상이 내옆으로 와서 미안하게 됐다고 말을 걸었다.

순간 뭐랄까. 피가 꺼꾸로 치솟는다고나 할까?
나는 순간적으로 한국말로
“야이~ 씨발새끼야 저리 꺼져! 이이 개새끼야 죽여버릴라!”
라며 주먹을 쳐들어 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려 하자 그는 어떤 말도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주위는 찬물을 끼언은 듯이 조용했다. 비록 한국말이었지만 내 거친 목소리와 행동으로 아마도 위협을 느꼈던것 같았다.

그렇게 이틀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나는 실업자가 됐다.
내겐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
주위의 모든 일본 사람들이 이유없이 싫어졌다. 모두가 다 이케부쿠로 회사의 사장같았고 C상같이 느껴졌다. 몇 일동안 그 어느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금방 포기하는 성격이라 일주일만에 훌훌 벗어버리고 남은 두달동안은 편안하게 가고싶었던 곳도 가보고 먹고 싶은 것도 먹어보고 하기로 했다.

나는 이때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도 이케부쿠로를 향해서는 오줌도 안눈다.
지금도 이케부쿠로는 왠만하면 가지 않는다. 갈때마다 이 때의 일이 떠올라서 그날 하루종일 기분을 망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일을 여러분들에게 털어놓는 이유는외국인 차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말도 못하면서 취업을 하게되면 비정상적인 기업이나 비상식적인 곳에서 일을 하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다.

세게 어느나라를 가도 외국인의 차별은 존재한다.
그러고 그런 차별의 주된 원인은 “말이 안통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정상적인 회사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기술보다 말을 먼저 배워야 한다.

말이 안되더라도 일단은 몸으로 부딧치며 외국에서 취업을 하고 싶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기업과 마주할수도 있다는 각오로 굳은 결심을 하고 와야지만 이겨낼 수 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비정상적인 악덕 기업에서 1~2년을 견딘 후에 정상적인 기업으로 이직을 하게되면 모든 일이 쉽게 느껴져서 그 후의 회사 생활이 훨씬 여유롭고 즐겁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벌을 내리다

벌을 내리다

어찌됐든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결국 한국으로 돌아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터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주가 지난 금요일 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씨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해서 만났더니 갑자기 죽고싶다고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후로 외국인 차별이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큰 것을 보고 나왔는데
“무슨 화장실을 15분이나 쓰냐며 화장실에 뭐했냐? 잠잤냐!” 라며 다구쳤다는 것이다.

아,, 정말 또다시 피가 꺼꾸로 치솟았다. 이 회사는 그냥 놔둬서는 안되는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가서 모뎀을 켰다.
며칠후에 정씨으로 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처리해 둔 일주일간의 데이터가 잘못되서 다 날라갔다고 난리가 났다고 했다.
복구할 방법을 몰라서 회사가 비상사태라며 혹시라도 복구할 방법을 알 수없는지 내게 전화를 해보라며 부탁을 했다고 했다.

나는 숨겨놓았던 복구용 배치파일 장소를 알려주면서 내가 알려준게 아니라 정씨가 만든 것으로 헤서 내일쯤 복구를 해놓으라고 부탁한 후 전화를 끊었다.
몇일 후 정씨가 집에 놀러왔는데 그 일 이후로 대우가 조금 좋아졌다고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비자 기한을 한 달 남겨두던 때였다.
후지이상에게도 연락해서 한달 후에 방을 빼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정말 아~무일도 하지않고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던 때였다.

저녁늦게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あ、もしもし、黒田ですが、覚えてますか?”
(아~ 여보세요, 쿠로다입니다. 기억하는지요?)
첫 파견지였던 도코미츠비시 은행에서 내 옆자리에 있었던 쿠로다상으로 부터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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