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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7 – 하편

이 글은 2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인연 – 続き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5분정도 지났을까?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를 이어서 온 두번째 손님은 50대 초반의 풍채가 큰 중년 남성으로 업소내에서는 아쯔시(篤)상으로 불렀다. 사카이(酒井)상은 이미 아쯔시(篤)상과는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일본의 씨름인 스모선수 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덩치가 큰 중년 남성이였다.
아쯔시(篤)상은 꽤 큰 IT 대기업의 시니어 매니저로 일반회사의 부장급에 해당하는 직책에 있었다.

얼마 안있어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40대후반의 닌텐도 마리오와 같은 느낌의 짙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으로 이분도 일본을 대표하는 모 기업의 부장이였다.
베트남 출장을 갔다 왔다며 베트남산 술과 베트남산 과자등을 가져와서 마마에게 건네 주었다.

사실 일본에서 술집을 들어갈 때 물과 관련된 것, 예를 들면 음료수나 술을 가져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술집은 술을 팔아야 하는데 손님이 술을 가지고 오면 술이 꺼꾸로 술집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라서 술집이 부정을 탄다는 나쁜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골 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는 곳은 서로가 친구처럼 지내기 때문에 선물의 의미로 술을 가져와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가져온 술도 혼자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마와 손님들이 다 같이 마시며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 40대 초반의 또 한 분이 들어왔는데 이분은 회사를 2개나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원래는 6년정도 직장에서 일하다가 독립해서 지금은 회사를 두개나 둔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제일 젊은 데다가 처음 온 외국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화제는 나를 향했다. 특히 아쯔시(篤)상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아쯔시(篤)상은 10여년전에 한국의 모 통신회사에서 개발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출장을 간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데이터 베이스의 설계상의 결함으로 인해 일시에 많은 유저들이 접속을 할 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먹통이 되는 현상을 발견해 내고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튜닝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에 한국인 직원들이 극진한 대접을 해 주어서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때 처음 먹어본 게장과 삼겹살의 맛에 매료되서 일 년에 한번은 꼭 한국에 갈 정도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분이였다.
그때문인지 아쯔시(篤)상은 유독내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들의 애환

Photo by Ricardo Gomez Angel on unsplash

그런데 대기업 부장쯤 되면 연봉도 상당히 높을텐데 왜 이런 조그맣고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는 돈많이 버는 사람들, 대기업 부장, 임원들은 긴자(銀座)의 고급 요정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격식을 갖추고 고급스런 요리와 함께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며 교양있게 먹는 모습을 한국의 드라마를 통해 너무도 많이 봐 온터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주위에서 술을 마시는 이 사람들은 결코 그런 고급스런 이미지의 대기업 중진들이 아니고 그냥 동네 어디에나 있는 중년 아저씨들의 모습일 뿐이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소리도 지르고, 결코 비싸지도 않은 위스키를 마시는 아주 흔한 동네 아저씨들의 모습이였다.

내가 또 궁금하면 못참는 성격이라 사카이(酒井)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카이(酒井)상은 그 대답은 아쯔시(篤)상에게 들을 수 있을꺼라고 했다.

아쯔시(篤)상의 말에 의하면 부장이나 임원이 되면 부하 직원들이 자신에게 격식을 차리고 속마음을 좀체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잘못된 이해를 해도 그 것을 고치려고 직언하는 부하직원도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외로워질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힘들어도 부하직원들에게 힘들다는 표현도 할 수 없고 모든 일에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회사를 위한 행동과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회사밖에서 다른 회사 중역들과 접대나 식사를 할 때도 그만큼의 격식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에 결코 편한 식사를 할 수없어서 먹는다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기 어렵다고 한다.
집에가면 마누라와 자식들 때문에 약한 모습도 보일 수 없으니 그냥 놔두면 결국 스트레스가 쌓여서 병이 될수도 있다.

그런데 선배에 이끌려서 20대에 찾게 된 이 작은 술집은 그런 격식이 필요 없다.
술집 주인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누나나 형처럼, 때로는 아주머니나 아저씨 역활을 해준다.
언제나 푸념과 애환을 들어주고, 충고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같이 기뻐도 해주니, 비록 일주일에 한번 오는 곳이지만 이 술집을 오는 날만을 학수고대한다고 했다.

이 작은 술집들은 그렇게 모든 직장인들의 희노애락을 같이 하며 격식없이 친구처럼 또 가족처럼 지낼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리고 그런 술집들이 유독 신바시에 많이 밀집되어 있기에 많은 도쿄의 직장인들이 대를 이어서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동기유발

동기유발

이날 이후로 아쯔시(篤)상과 나는 자주 이 술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해 겨울. 아쯔시(篤)상의 차를 타고 이카호(伊香保) 온천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쯔시(篤)상은 내 웹 기술을 썩히는 것이 아깝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사카이(酒井)상과 함께 그 술집을 찾았는데 아쯔시(篤)상과도 만날수 있었다.
아쯔시(篤)상은 내게 한 중소 기업의 홈페이지 제작을 의뢰했다.
나는 아쯔시(篤)상의 부탁이라 무료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만류로 당시 한 페이지당 10,000엔의 꽤 높은 제작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 일본의 홈페이지는 촌스런 그림과 아이콘이 몇개 들어가는 텍스트 문서 수준의 홈페이지가 일반적이였다. 따라서 조금만 더 세련되게 디자인을 손 봐주는 정도만으로도 시각 효과가 높아져서 한국식 홈페이지 디자인을 적용한 홈페이지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의 중소기업 홈페이지는 아직도 텍스트 위주의 홈페이지가 의외로 많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회사 일과 웹 에이젼시 프리렌서로 투잡을 뛰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수입도 많이 늘었는데 내 취미가 수입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 스트레스 해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년후.
사카이(酒井)상과 아쯔시(篤)상의 도움으로 난 또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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