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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16

20년전의 인연

일본취업 22년을 돌아보다

면접관이 대뜸 “혹시 키쿠치(菊池)상을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키쿠치(菊池)상요? 알지요? 에? 아니 키쿠치(菊池)상은 어떻게 아시는지요?”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적지않이 놀랐다.

20년전 내가 모 보험회사에서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가했을 당시에 면접관도 그 프로젝트에 참가했었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 이 회사는 저희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라며
나는 더욱더 희아해했다.

면접관은 당시에 IBM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3년전에 이 외자계 회사로 스카웃되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 나는 IBM과의 계약으로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가하였는데 그 분은 IBM직원으로 시스템 지원팀에 있었다고 했다.
같은 회사를 통해서 참가했다고 해도 워낙 큰 프로젝트라서 서로 같은 팀도 아니고 팀과의 연관성도 없었기에 나는 그분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그분은 나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면접관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아제상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어요.
한 젊은 외국인 설계가가 감히 어느 누구도 대적하지 못했던 기세 등등한 고객사의 키쿠치(菊池)상을 꺾었다는 소문이 프로젝트 전체에 퍼졌었으니까요.
더군다나 IBM소속이라 나도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보러 가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아제상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영상 조회 시스템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광디스크 도입을 위해 시스템 지원팀과 몇차례 회의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같은 회의 장소에 있었다고 한다.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한다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한다

면접은 의외로 면접이 아니라 20년전 과거 이야기로 1시간을 때웠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세상이 이렇게 좁구나” 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래서 필요이상으로 남을 공격하거나 적을 만들면 안되고 미움을 살 일을 해서도 안된다 것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회사를 옮기는 분들 중에는 회사에 불만이 있다 거나 동료들간 또는 직장 상사와의 트러불로 인해 서로 좋지않은 관계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올 수 있다.
이런 경우 어차피 다시 보지않을 회사니 내가 내키는 대로 하고 그만두겠다고 생각하기 쉽다
.
예를 들어 갑자기 2주를 남겨두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다던지,
업무 인수인계는 제쳐 두고 남은 기간동안 월차 휴가를 내서 끝낸다던지,
이런 행동은 그냥 내 화풀이에 지날 뿐이다.
내 행동으로 인해 보기 싫은 동료나 직상상사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통쾌해 할 수는 있지만 관계없는 사람까지 곤란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퇴직일이 결정되었다면 정말 죽기보다 싫은 회사가 아니라면 퇴사일까지 성실하게 일을 하고 업무인수인계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날에는 회사사람들에게 조그만 과자라도 하나씩 건네 주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보기 싫은 동료나 직장상사와는 마주하기 싫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책상위에 슬그머니 과자를 놓아두어도 좋다.

잠시동안의 휴식

Photo by Edmundas Stundzius on unsplash

어쨌든 며칠후에 1차 면접 합격 연락을 받고 2주후에 2차면접 일정이 잡혔다.
나는 다음 면접을 볼때까지 잠시 한국에 귀국해서 인천의 부모님 집에 머물렀는데 어머니는 2년간 쉬고 있는 나를 걱정하시면서
“취직을 안할거면 매달 보내는 용돈은 앞으로 보내지 마라.
일도 안 하면서 매달 보내는 돈을 마음 편히 받을 수가 없구나” 라고 걱정하셨다.

“어머니 돈은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러잖아도 저 이번에 면접을 봤거든요.
1차 합격했는데 아주 큰 기업이라서 아마 2차나 3차 면접에서 떨어질꺼예요.
그냥 재미삼아 보는 거니까 너무 기대는 마세요.”
나는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비밀로 하려했던 면접 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머! 그래서 이 꽃이 겨울인데 이렇게 빨갛게 피였구나!
제철도 아닌데 철쭉이 피길래 무슨 좋은 일이 있을래나하고 생각했는데 니가 면접을 봤구나.
그 회사 합격할꺼다. 꼭 다녀라!”
라며 어머니는 마치 내가 또 대기업에 합격이라도 한 듯이 좋아하셨다.
“아니 어머니는 미신도 아니고 겨울에 거실이 따뜻하니까 꽃이 핀 거죠. 어머니두 참!”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2차면접을 보다

2차면접을 보다

그렇게 일본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며칠 후 2차 면접을 보게 되었다.
2차면접은 세분의 면접관이 왔는데 두 분은 기술담당 이였고 한 분은 인사 담당자였다.

이미 에이전트로부터 기술면접에 관해 미리 연락을 받은 터라 공부를 좀 많이 해왔으나 긴장이 좀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기술적인 분야보다는 관리 분야에 관한 질문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자면 전혀 모르는 환경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을 할수 있겠느냐 라던지
개념을 이해못하는 개발자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 것인지 등의 관리적인 면과 기획에 관련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젝트 매니저를 뽑는 것이라 아무래도 자세한 개발 기술력 보다는 관리 쪽과 창의적인 부분 그리고 도전정신에 대한 부분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되도록 또박또박 내 소신과 경험을 토대로 질문마다 3분에서 5분 정도로 너무 짧거나 길지 않게 답변했다.

조금 긴장했던 탓인지 1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이전트로부터 면접 분위기는 어땠냐는 안부전화가 왔다.
난 느낀 그대로 준비했던 것과는 다른 질문이 많아서 대답은 했지만 이번에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다른 경쟁자들도 많을 테니 아마도 이쯤에서 끝 날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에이전트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다려 보자고 격려해주었다.

면접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4일동안 정말 아무 일도 잡히지 않더라.
처음엔 그냥 면접방법을 테스트 해보는 걸로 시작했는데 우연찮게 대기업의 채용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1차면접을 통과하고 보니 2차면접에서도 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많은 관심이 들게 되었다.
앞으로 3번이나 면접이 남았는데 말이다.

강적을 만나다

강적을 만나다

그로부터 4일후 저녁쯤에 에이전트로부터 2차 면접에 합격했다며 축하한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사실 그때 솔직히 조금 아주 쪼금 기뻤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3차면접 일정이 잡혔다.
3차면접은 인사부장급이 면접관으로 나온다고 했다.

인사부장은 상당히 굳은 표정에 좀 무섭고 엄격한 느낌의 분위기를 풍기는 6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스킨헤드의 정념이었다.
3차면접도 약 1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
인사부장은 내 경력서를 보면서 프로젝트의 과정을 물었는데,
이때 트러블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했는 가라는 점과
부하직원의 트러블로 직장상사가 화가 났을 때 중간의 위치에 있던 나는 어떻게 했는가 라는 등의
대처방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3차면접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면접관이 너무 엄격해 보이는 데다가 대답하는 중에 생각할 틈도 주지않고 다른 질문을 하는 통에 겉으로 표현은 하지않았지만 적지않게 당황했었다.

면접이 끝나고 저녁에 또다시 에이전트로부터 면접 분위기가 어땠는지 전화연락이 왔다.
나는” 첫인상이 너무 무서웠다”고 대답했고 아마도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에이전트는
“그분이 모습이 좀 조폭같이 생기긴 했지만 엄청 친절하고 상냥한 분이신데요”라고 의아해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 여기까지 구나. 내게 그렇게 무섭게 몰아친 게 이미 불합격이 정해졌던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뭐~ 50넘은 지잡대 나온 외국인이 일본에서 대형 외자계 회사에 3차까지 간 것도 잘 한 것이라고 혼자서 위안을 삼았다.
어차피 취직을 하려는 목적보다는 제 자신을 테스트해보려고 했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충분히 갑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7일 에이전트로부터 3차면접이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4차면접은 2018년 12월 25일로 잡혔다.
나는 약간은 상기된 모습으로 다시 4차 면접을 받게 되었다.
4차면접때도 3차면접에서 본 그 인사부장이었는데 3차때와는 아주 딴 모습으로 너무도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사실 말이 4차면접일 뿐 그날은 내가 이미 내정이 확정되어서 회사내에서의 내 직책과 연봉 그리고 언제부터 입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복지 혜택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날이었다.

인사부장이 마지막으로 궁금한 사항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 왜 그토록 3차면접때는 엄격한 표정으로 다그치듯이 생각할 틈도 주지않고 질문을 했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인사부장은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아제상은 저희 고객사에 상주하며 많은 부하직원들을 이끄는 위치에서 고객들과도 직접 대화하고 고객에게 컨설턴팅을 하게 됩니다.
고객이나 부하 직원들 중에는 상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격이 급해서 다그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무례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돌발상황이 닥쳤을 때 아재상은 순간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보기보다 부드러운 남자예요~ 잘 부탁합니다~” 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때서야 에이전트가 “그분 아주 친절하신 분인데요~”라고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Offer Letter를 받았다.
Offer Letter란 외국계 회사가 주로 사용하는 채용 계약서로 한국의 연봉계약서나 근로 계약서에 해당한다.
즉 이 Offer Letter에 내가 사인을 하는 순간 채용이 확정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12월 25일은 우연하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첫사랑도 12월 25일에 만났고, 일본에서의 첫사랑도 12월25일 0시에 내가 자주가는 스나쿠의 마스터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500명을 넘은 날도 바로 2018년 12월25일 이였다.
그리고 이날 나는 외자계 대기업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Offer Letter를 받았다.

비록 지잡대 나온 50살이 넘은 외국인이지만 내 나이에도 대기업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30대인데 가능할까요? “
“40대인데 두렵다. “
“50대는 안되겠죠?”
이런 메일들을 정말 많이 받는다.
“분명히 어려운 일이고 두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도전해 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도전해 보라.
또 떨어졌다고? 아니 그렇게 쉬울 줄 알았나요?
부족한점을 다시 채워서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 보라!”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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